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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버지를 찾아 가는 길

인사동 아침이 밝아온다. 오늘은 기어코 아버지를 찾아 가야겠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내가 8살 즈음 아버지는 어린 사 남매와 어머니를 남겨 두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 어렸지만 장손인 나는 삼베 상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집고 맨 앞에서 상여를 따라 산 길을 올랐다. 뒤에는 어머니와 세 누이가 따랐고 그 뒤로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행렬을 따라 들려오는 까마귀소리, 지금도 까마귀 울음 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산 길을 오르던 그때 생각이 생생하다. 어린 손으로 퍼 올린 흙이 관 위에 뿌려졌고 이어 아버지 관 위로 거침 없이 흙더미가 뿌려졌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셨고 누이들은 세차게 울었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내 어깨를 감싸고 지나갔고 나는 산 아래를 바라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버지, 그의 모습이 떠올라 뒤돌아보니 아버지의 누운 자리에는 이미 흙더미가 쌓여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어머니는 자꾸 쓰러지셨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시카고로 떠나기 전 아버지 묘를 대전에서 조금 떨어진 가족 묘지로 옮기기로 했다. 묘지의 분봉을 해체했다. 아직도 유골은 흐트림 없이 그대로 있었다. 조각 하나하나를 솜에 알콜을 묻혀 닦았다. 작은 실뿌리를 떼어내고, 흙을 털어내고, 거즈로 유골을 싸 상자에 넣어 보자기에 고이 싸서 산을 내려오며 나는 말했다.    “아버지 오늘 이사가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옆으로 가세요. 한동안 못 뵐 것 같아요. 자리 잡힌 후 꼭 돌아올 테니 편히 계셔야 해요.” 그렇게 아버지의 유골은 준비해간 작은 항아리에 담겨져 대전에서 조금 떨어진 문이라는 산골 가족묘지로 옮겨졌다. 아버지를 가족묘지에 모시고 돌아오는 시골 길 위로 진한 흙내음이 코 끝에 가득했다. 지금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버지묘를 시카고 Rosehill Cemetery로 이장해 나란히 마주보며 계신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안다 눈에만 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 속에도 눈물이 있다   생각날 때마다 가슴에   고이는 눈물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2번의 이장을 통해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늘 나는 아버지가 계셨던 국회 도서관으로 간다. 몇 차례의 지하철을 바꿔 타고 눈물 나게 친절한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당도한 국회도서관은 웅장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는 국회도서관은 그냥 입장할 수 없었다. 입구에서 입장 카드를 만들고 보관함에 짐을 맡긴 후에야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혹시 안내원에게 지난 국회 도서관장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곳이 있느냐고 물어 봤지만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컴퓨터로 찾아 보라는 안내원의 말을 따라 오랜 시간 노력 끝에 ‘제2대 국회도서관장 신현경’의 자료가 6층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6층에 올라가 자료 열람 카드에 정보를 제출한 후 얼마 후 왠 큰 액자 하나를 들고 사서가 들어왔다. “이 분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라는 질문에 “제가 아들입니다. 멀리 시카고에서 왔습니다.” 직원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액자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사진은 깨끗하게 보관 되어 있었다. 사진 밑에 ‘제 2대 국회 도서관 관장 신현경’ 금박 명패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60년을 보관해준 고마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짙은 안경테 너머로 눈빛이 보였다. 그 눈빛은 살아 있는 듯 했다. 나의 눈빛과 아버지의 눈빛이 만나는 순간 아버지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는 듯 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걷고 있는 인사동 거리에서도, 호텔 창가에 비친 풍경 속에서도 아버지의 눈빛은 오랫동안 내게 다가 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아버지를 사진으로만이라도 만나 뵐 수 있었다는 편안함이 몰려왔다.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오늘 순간 아버지

2022-10-31

코로나19시대 가슴앓이 만남

팬데믹 이후 여행이 비교적 자유롭게 되면서 한국을 찾는 방문객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팬데믹 기간중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던 것이 이동제한이었는데 특히 한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지 못해서였다. 현재는 팬데믹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고 이전보다 자유로워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팬데믹 기간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과의 만남을 고민해봤다.   한국의 가족 방문 이외에도 미국내 가족 방문도 팬데믹 기간중에는 매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가족같이 지냈던 지인과의 만남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인간이 가까운 사람, 가족,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마치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것이라면 이전 세기에는 없었던 다양한 디지털 만남의 기기가 그나마 소식을 전달해줬다는 점이다. 만약 팬데믹이 아이폰 출시 직전인 15년 전에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외로움과 단절감에 빠져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수긍이 가는 이유다.     #80대 초반인 엘리자베스 김씨는 최근 별세한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심한 몸살을 겪는 바람에 한인타운에서 치러진 장례식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씨의 아쉬움은 상당하다. 10년 넘게 같은 시니어아파트에서 매달 모임을 함께 하며 친하게 지냈던 7명중 한 사람인 8세 연상의 지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만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서다. 지인의 아들이 입원시킨 병원이 세리토스에 있는데 고령인 엘리자베스씨는 운전이 어려워 지인의 아들에게 어렵게 라이드를 부탁했지만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10년 지기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지인의 마음도 모르고 김씨의 마음도 모르는 지인의 아들이 야속했다. 결국 자신의 몸이 불편해 가까운 곳에서 열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샘 백씨는 최근 타계한 아버지와의 마지막 며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지난 7월 간단한 시술을 위해 입원했던 80세의 아버지가 다른 암이 너무 경과한 것을 발견해 퇴원을 하지 못한 채 별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씨는 아버지가 입원했던 몇 주중 대부분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했다. 특히 마지막 1주일간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위로하며 아버지의 마무리를 도왔다. 자신은 불효자라고 하지만 수많은 아들들은 할 수 없었던 임종을 제대로 한 것이다. SNS에서 백씨는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소개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상당히 많은 의료시설이 폐쇄됐다. 팬데믹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코로나로 인한 별세는 물론, 코로나가 아닌 병환으로 세상을 등진 시니어들 상당수도 가족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가족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른 것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고 대부분 통보만 받은 경우가 많다. 더구나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별다른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매장하는 사태도 있었다. 뉴욕에서 일어난 일로 창궐하는 코로나에 장례 서비스가 감당하지 못하자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관을 묻는 사진이 공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에서 요양병원에 거주하는 연로한 부모를 둔 한인들의 가슴 앓이도 상당히 심했다. 이미 60대인 자녀가 90대인 부모가 입원한 요양병원이 폐쇄돼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다. 운이 좋은 제니퍼 신씨는 지난해 12월 요양병원이 잠시 문을 열었던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 90대 어머니 침대 옆에서 1주일을 간호하다가 돌아왔다.       #한인이 미주에 거주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한국에 거주하는 연로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상당수가 별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를 몸을 싣게 된다. 그래서인지 팬데믹이 끝나가는 현재 한국행 비행기 좌석은 완전 만석이다. 팬데믹 기간중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해서 부모를 뵙지 못한 '불효 자식'들도 상당수다. 그나마 살아계셔서 만나러 갈 수 있는 자식들은 팬데믹 기간중 타계한 부모를 둔 사람들을 배려해 표정관리를 하며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   포스트 팬데믹, ‘줌’을 열어라   전문가 제안      "만남의 줌을 열어라, 그런데 단 40분이다."   팬데믹이 끝났다고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만남의 필요성, 혹은 당위성은 알게 됐지만 현실은 녹녹치가 않다. 하지만 만남의 광장에 매일 나갈 수는 없지만 만남의 줌은 열 수 있다.   팬데믹으로 줌(Zoom.us)같은 화상 만남서비스가 일반화됐다. 이전에는 "난 컴퓨터 몰라." 그러면서 손사래를 치던 시니어들도 이제는 세상에 순응해 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화상 만남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첫째, 규칙적인 같은 시간 모임이 중요하다. 월요일마다 오전 수업 시작 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있는 조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줌을 통한 가족 만남의 시간을 1주일에 한번으로 정하라. 예를 들어 목요일 오후 8시쯤으로 하면 좋다. 가족에 따라서 1주일에 2번 만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1주일에 한번이 무난하다. 격주나 2주에 한번은 잊기 쉽고 1개월에 한번은 흐지부지 되기 쉽다. 또한 줌은 40분이 무료다. 굳이 유료 버전을 쓰지 말고 딱 40분만 만나라. 녹화가 가능하니 나중에 다시 보는 가족도 참여할 수 있다. 둘째, 참여가 중요하다. 가족이 아주 적지 않다면,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배려하라. 또한 예를 들어 연속해 3번 빠지면 안된다는 의무 규정 등을 정하라. 물론 주최자는 항상 문을 열고 기다려야 한다. 셋째, 안부부터 묻고 격려하는 시간이 되라. 디지털 화상을 통해 얼굴이 보이면 처음엔 누구나 쑥쓰럽고 말문이 안 열린다. 재벌회사 사장단 모임도 아닌데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다. 일단 가족 안부부터 얘기하고 절대 혼내거나 꾸짖는 시간이 아닌 격려의 시간이 돼야 한다. 여유가 되면 가족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좋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얘기, 미국에 이민 오게 된 사연 같은 것도 손자녀들에게 좋은 가족 이해의 기회가 된다. 넷째, 토론의 시간도 좋다. 나중에 가능해지면 주요 주제로 가족간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다섯째, 규칙은 없다. 가족 모임을 화상으로 갖는 것은 가족을 위한 것이다. 만약 여의치 않으면 안해도 사는데 전혀 지장없다. 그래서 규칙은 없다.       장병희 기자아이폰 가슴앓이 가족 방문 한국행 비행기 아버지 어머니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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